스페인 전통 와인 쉐리 주 : 헤레스 (Jerez)
스페인 전통 와인 셰리(Sherry) 주 : 헤레스(Jerez)
오래전 스페인 체류 시 즐겨 마시던 쉐리 주 Tío Pepe(띠오뻬뻬)가 생각났습니다. 살짝 단 맛도 있는 쉐리 주는 식전 주로 제격이었고 가끔 여럿 모인 자리에서는 올리브, 치즈, 초리소, 안초비 등 안주 삼아 일반 와인보다 알코올 도수가 조금 높은 쉐리 주를 마시곤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체류 중일 때나 해외 출장 시 손님들과 식사하면서 쉐리 주를 한잔 시키고는 합석한 사람들에게 쉐리 주와 관련된 얘기를 들려주곤 했습니다. 우리 국내 수입 와인 시장에도 스페인 쉐리 주가 나와 있는지 찾아보고 있는데 쉽게 찾을 수 없어 아쉽습니다.
쉐리(Sherry)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헤레스(Jerez de la Frontera) 근처 지역에서 자란 백포도로 만든 주정강화 포도주입니다. 쉐리의 공식명칭은 헤레스 와인이란 뜻으로 비노 데 헤레스(Vino de Jerez)라고 부릅니다. 스카치위스키, 샴펜 발포주, 코냑 브랜디 등 제법 유명한 술은 지명을 따르는 것처럼 쉐리나 헤레스도 지명을 말합니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카디스(Cádiz) 주에 헤레스(Jerez)가 있습니다. 헤레스 원산지 증명의 공식 명칭은 D.O. Jerez-Xeres-Sherry입니다만 이 명칭은 쉐리 트라이앵글이라는 삼각지대 내에서 생산된 쉐리에만 붙일 수 있습니다. 이 삼각지대는 헤레스(Jerez de la Frontera), 산루카르 데 바라메다(Sanlúcar de Barrameda)와 엘 푸에르토 데 산타마리아(El Puerto de Santa María) 사이를 말합니다. 아래 지도에서 빨간 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쉐리와 헤레스는 영어와 스페인어일 뿐 같은 말입니다. 애초에는 철자도 같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각자 사용하는 철자가 변화되었습니다. 원래 스페인어 고어에서는 지명이 Xeres였는데 점차 X가 J로 변화되었고 영어에서는 X가 Sh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오래된 기관이나 조직의 명칭에 X 글자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현대 스페인어에서 J로 바뀌었습니다. 헤레스 지역은 기원전 페니키아 인들로부터 와인 양조기술을 도입하면서 와인 양조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이후 무어인들이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할 때 증류방식을 고안해서 브랜디와 주정강화 와인이 만들어졌습니다. 영국인들이 특히 이 스페인 헤레스를 좋아했습니다.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프랑스 와인을 수입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스페인 와인 중에서도 헤레스에 열광하였고 헤레스는 영국인들이 좋아하는 스타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위 사진은 헤레스 원산지 증명으로 쉐리 트라이앵글 지역에서 생산된 쉐리에만 붙일 수 있는 라벨입니다. 아래 사진은 프리메라 리그에 속할 정도는 아니고 3부 리그에 속해있는 스페인의 헤레스 축구팀 로고입니다. J 대신에 X 자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쉐리는 와인을 만들 때 발효가 완료된 후 거기에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 증류주를 첨가해서 전체적인 알코올 함량을 높이게 됩니다. 쉐리 와인은 발효과정의 차이로 여러 종류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피노(Fino)와 만사니야(Manzanilla) 경우 알코올 함량이 15.5% 될 때까지 발효시킵니다. 이후 통 안에서 숙성될 때 플로르(Flor)라는 효모층이 와인 위에 형성되면 산소 투과율이 낮아져서 산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올로로소(Oloroso) 경우에는 알코올 함량이 17% 될 때까지 주정을 첨가해서 알코올 농도를 높이게 되면 이 때문에 플로르가 형성되지 못하고 이후 숙성과정에서 천천히 산화가 일어나 색이 어두워지게 됩니다. 주정 첨가가 발효 이후 일어나기 때문에 대부분의 쉐리들은 드라이합니다. 반면 포르투갈의 포르투 포도주는 발효과정에서 주정을 강화하기 때문에 발효과정이 중단되면서 포도의 당이 일부 알코올로 변환되지 않아 단 맛이 남게 되는 것입니다. 다 같은 주정강화 와인이지만 스페인의 헤레스는 대부분 드라이하고 포르투갈의 포르투는 스위트합니다. 또한 헤레스 와인은 솔레라 시스템이라는 독특한 품질 유지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생산연도가 다른 와인들을 통에 보관하면서 매년 새 와인들을 조금씩 섞어 전체적으로 비슷한 맛과 품질을 유지하게 됩니다.
위의 사진은 관람객을 위해 통의 앞면을 투명하게 만들어 와인 위에 형성되는 플로르(Flor)라는 효모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솔레라 시스템으로 생산연도가 다른 와인을 매년 조금씩 섞어주기 위해 바릴을 쌓아놓은 창고입니다.
식당에서 헤레스를 주문할 때 여러 종류의 헤레스가 있으니 입맛에 맞는 쉐리 주를 주문하면 됩니다. 특별히 쉐리 주로 특화된 식당이 아니라면 그렇게 많은 종류를 구비하지 않겠지만 별난 손님인 척하고 한번 주문해보는 거지요. 해외출장 시 비즈니스석을 타게 된다면 공짜 쉐리 주를 주문해봐도 좋을 거 같습니다. ㅎㅎ
Fino (피노) - 알코올은 15%정도이며 깨끗하고 아로마 향에 드라이한 맛입니다. 숙성과정에서 플로르라는 효모층이 생성되어 산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Manzanilla (만사니야) - 주로 Salucar de Barrameda지역에서 생산하는데 해안지역이기 때문에 서늘하고 습기 있는 환경으로 숙성 시 피노보다 짙은 플로르가 형성됩니다.
Manzanilla Pasada (만사니야 파사다) - 만사니야 중에서 숙성기간이 길거나 약간 산화된 것으로 견과류 향이 풍부하게 됩니다.
Amontillado (아몬티야도) - 숙성 시 플로르에 공기가 차단되었다가 이후 산소와 접촉하며 산화되어 만들어지는 와인입니다. 피노보다 짙은 색이지만 올로로소보다 밝은 색입니다.
Palo Cortado (팔로 꼬르따도) - 아몬티야도처럼 숙성시키다가 도중에 올로로소처럼 색이 진해진 종류입니다.
Oloroso (올로로소) - 숙성과정에서 산소와 오래 접촉해서 색이 진하며 풍부합니다. 알코올은 18~20도로 가장 높습니다.
Cream (크림) - 올로로소에 당을 첨가해서 만드는데 medium sweet와 sweet가 있습니다. 크림 쉐리(Cream Sherry)는 주로 수출시장 용으로 제한된 수량만 만들게 됩니다.
Pedro Ximénez (페드로시메네스) - 가장 단맛입니다. 포도의 단맛을 증가시키기 위해 건포도처럼 건조된 포도를 사용해서 만듭니다. 약칭으로 PX 또는 Ximénez라고 부릅니다. Cream을 만들 때에 PX를 첨가하는 것처럼 드라이한 다른 종류들과 섞어서 새로운 종류를 만들기도 합니다.
Moscatel (모스카텔) - PX만큼은 아니지만 당도가 진한 종류입니다.
아래 사진은 스페인 세빌야를 방문한 한 관광객이 찍은 어느 식당의 스탠드바 뒷면 칠판에 쓰인 쉐리 주 메뉴입니다. 각종 쉐리 주가 다 보여 재미있습니다. 안달루시아 지방이니 저렇게 많은 종류를 다 구비하고 있나 봅니다. 가격은 한잔 가격일 텐데 PX처럼 단술이 더 비싼가 봅니다. 맨 처음 소개했던 Tío Pepe는 메뉴 맨 위의 Fino에 속합니다. 스페인으로 여행가시게 되면 쉐리 주를 한번 시음해 보도록 하세요.
포도 품종은 아래와 같이 3개의 청포도 품종만 사용하고 있답니다.
Palomino (팔로미노) - 드라이 와인을 만드는 주요 품종으로 쉐리 와인의 90%를 점유합니다.
Pedrojiménez (페드로히메네스) - 스위트 와인을 만드는 데 사용되며 수확 후 약 2일간 건조해 당분 함량을 높입니다.
Moscatel (모스카텔) - 페드로히메네스와 유사합니다.
쉐리 주는 피노처럼 드라인한 경우에는 오픈하고 바로 마시는 게 가장 맛이 좋습니다. 오래 두고 마실 수는 없는데 PX 또는 PX와 블랜딩한 단술은 당이 방부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오픈 후 몇 주씩 보관해도 괜찮습니다. 단술은 보통 식전주보다는 식후주로 디저트와 함께 하면 좋습니다. 아래 사진처럼 아이스크림에 넣어도 맛이 있어 보입니다.
아래 사진은 쉐리를 따르는 전통적인 방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넨시아(Venencia)라고 부르는 긴 샤프트를 가진 도구를 사용해서 왼쪽에 보이는 쉐리 통의 작은 구멍을 통해 쉐리 위에 덮여있는 플로르 효모층을 가급적 흩트리지 않고 속으로 넣어 쉐리 와인을 건져서 쉐리 잔에 따릅니다. 이렇게 통에서 따르는 사람을 Venenciador라고 말합니다.
이상 쉐리, 헤레스와 관련한 자료는 위키피디어와 인터넷 여기저기에서 많이 참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