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전환, 조망수용 능력 (Perspective Taking Ability)
두 사람이 바닥에 쓰여있는 6자를 보고 아래쪽에서 보는 사람은 6이라 하고 위쪽에서 보는 사람은 9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생각하지 않고 내가 본 대로만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오늘은 교육심리학에서 나오는 관점전환 능력(觀點轉換能力), 다른 말로 조망수용 능력(眺望收容能力, Perspective Taking Ability)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관점전환 능력에 관한 실험이 하나 있습니다. 예쁘게 생긴 초콜릿 상자에 연필을 넣어 두고 아이를 불러 물어봅니다. "이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아이는 주저 없이 "초콜릿"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상자 뚜껑을 열었더니 초콜릿은 없고 연필만 들어 있는 걸 보여줍니다. 그리고 상자를 닫고 다시 물어봅니다. "저기 창밖에서 놀고 있는 저 애보고 이 상자 안에 뭐가 있냐고 물어보면 쟤가 뭐라고 답할까?" 성인들이라면 당연히 "초콜릿"이라고 대답하겠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대답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관점과 타인의 관점을 분리할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초콜릿 상자 안을 봐서 알고 있으니 다른 사람도 당연히 안다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상대 관점에서 보지 못하고 내 관점으로만 상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서너 살 되는 아이들이 하는 얘기를 옆에서 들어보면 서로 다른 주제로 말하는 걸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상대가 듣거나 말거나 자기 생각을 얘기하고 상대 얘기도 귀 담아 듣지 않습니다. 자기 관점에서만 사물을 보고 혼자 얘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만 4살이 지나야 상대 관점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관점전환 능력이 생긴다고 합니다. 말하는 것도 독백 수준에서 점차 상대가 있는 대화로 발전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관점전환 능력이 커지게 되지만 어느 정도 자란 후에도 이런 능력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전교에서 수석 하는 아이가 반에서 밑바닥인 아이에게 "왜 수학이 어렵다는 거지?" 하며 이해를 못합니다. 관점전환 능력은 나이를 먹거나 자기 주관이 강해지게 되면 오히려 퇴행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나이 들면서 조그만 일에도 삐치고 노여워하는 건 이런 관점전환 능력이 퇴행하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또 자기 주관이 강해서 상대 관점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고 상대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서툴게 됩니다. 오랜 기간 갑질만 하던 사람이 어떻게 을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고용주가 어찌 미생 알바생이나 비정규직의 관점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또 반대로 일용직 근무자가 경영자의 전략적 사고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필요하지 않으니 생각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편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상대 관점에 대해 이해해 보려고도 않고 억지로 등까지 돌리는 건 특히 정치인의 전유물인 듯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대치하고 있는 좌와 우, 지역, 세대, 빈부 집단들의 행태를 보면 마치 어린아이 수준보다도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사회가 미래 지향으로 발전하고자 원한다면 소위 정치한다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못한 일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말이나 글과 같은 표현수단으로 생각과 마음을 주고받게 됩니다. 우리가 사실대로, 진솔하게, 쉽게, 또 상대 처지에 맞게 말한다는 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사람들은 자기 생각, 자기 방식, 자기 관점으로만 들으려 합니다. 그래서 본래의 뜻이 왜곡되기 십상입니다. 말을 할 때는 바르게, 쉽게, 또 분명히 얘기해야 하고 들을 때에는 있는 그대로 내 생각을 내려놓고 듣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내가 "아"라고 말했는데 상대는 "어"로 알아듣게 됩니다. 자기 생각, 자기 방식, 자기 관점에서만 말하고 또 듣고자 한다면 이런 왜곡은 끝도 없이 반복될 것입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 생각"을 먼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와 어울리는 사회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상대 관점에서 생각해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집에서도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가정이나 사회에서 언제나 누군가와 대립하면서도 또 협력하며 지내야 하는데 불필요한 갈등이 생긴다면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닐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실에 대해 다르게 해석해서 생기는 오해는 많은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본 것, 자기가 느낀 것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상대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게 필요합니다. 상대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자기가 마치 독심술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안 될 것입니다. 상대의 생각을 훔치자는 게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나 관점을 이해할 수 있어야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역지사지, 타인이해, 관점전환 등 비슷한 말을 수없이 듣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실제로 내 머리와 가슴, 그리고 행동으로까지 이르기에는 멀고 먼 산인 것 같습니다. 그럴 때 법정스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사랑이란 타인과 대립할 때 자기를 버리고 타인과 합일하려는 노력이다. 그건 닫힌 나로부터 열린 나로 나아가는 길이다. 삶은 대결이 아니라 포용이다. 사랑의 실천이란 자기와 타인이 대립하고 있을 때 자기를 부정하고 타인에게 합일하려는 노력이다." 정말 아주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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