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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화투의 유래, 비광 그림의 남자 : 오노도후

by 77 Harvey 2020.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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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투(花鬪) 비광 그림의 남자, 오노도후(小野道風)

화투의 유래, 하나후다(花札)

 

얼마 전 카톡방을 통해 화투(花鬪) 비광에 등장하는 남자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예전부터 무슨 의미의 그림일까 궁금하던 차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지어낸 얘기인가 싶어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유용한 정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전에도 화투를 볼 때 이게 어디서 유래한 걸까? 일본에서 왔다는 데 맞는가? 어떻게 일본 화투가 우리 국민 놀이가 되었을까? 등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귀찮기도 해서 그냥 넘겨왔는데 인터넷을 통한 정보검색이 쉬워진 시절이 되고 보니 좀 더 찾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검색해 보았더니 많은 의문이 풀렸습니다. 지금은 화투 만져볼 일이 없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몇십 년간 화투를 가까이했는데 화투의 유래나 비광의 뜻도 모르고 지내왔다는 게 부끄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이미 인터넷 정보로 많이 알려진 얘기이지만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고 싶어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흥미의 시발점이 되었던 오노도후에 대한 이야기를 옮겨 보겠습니다.

 

 

 

화투 비광을 보면 우산을 든 사내가 개구리를 바라보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에 나오는 사내는 일본의 유명 서예가인 오노도후(小野道風, 894-967)입니다. 이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일본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그는 헤이안 시대 인물로 일본에서는 후지와라 유키나리(藤原行成), 후지와라 스케마사(藤原佐理)와 더불어 산세키 (三跡)의 한 사람으로  꼽힙니다. 당시 일본은 중국의 왕희지 서체를 추앙하던 시절인데 오노도후를 비롯한 산세키가 등장하면서 조다이요(上代樣)라고 불리는 일본의 독자적 서체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오노도후는 궁중에서 관리를 지내며 시와 서예 부문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습니다. 그를 두고 왕희지가 다시 태어났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그의 서체는 눈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습니다. 그가 젊은 시절 큰 실의에 빠졌던 적이 있는데 그때의 일화가 비광의 배경입니다.  

 

오노도후는 어려서부터 서예에 입문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시간이 지날수록 일취월장하는 실력을 느끼게 되었고 갈수록 힘이 붙어 거침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글에서 강렬한 기운이 느껴져 스스로 감탄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만하면 세상에 내 이름을 드러내도 될 거라며 자만할 즈음에 한 스승을 만났습니다. 그는 무명의 스승이 보여준 필법의 세계 앞에 감명을 받게 되었는데 그에 비하면 자신의 글씨는 그저 어린아이 낙서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습니다. 오노도후는 그간 공들여 쓴 작품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스승의 문하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한 획, 한 글자를 마치 베인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는 듯 처절하게 썼습니다. 그의 글씨는 더 깊은 맛이 배기 시작했지만 스승은 칭찬 한마디 없이 똑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더 잘 쓰도록 해라"

 

그는 점점 의심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혹시 스승이 날 인정하지 않으시려는 건가? 결국 좌절한 나머지 스승의 말은 자신의 부족한 한계를 돌려 말하는 것으로 생각해서 비관 끝에 서예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해도 나는 안 되는구나. 이젠 지쳤어. 해도 해도 안 되는 건 포기할 수밖에 없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어느 날 아침에 짐을 싸서 처량한 마음에 스승에겐 인사도 하지 않고 문밖을 나섰습니다. 그간 고생하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집 앞 버드나무 곁에서 우산을 쓰고 우두커니 빗물이 홍수가 되어 흐르는 개천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개천 한가운데 작은 바위 위에 갇혀있는 조그만 개구리 한 마리가 흙탕물에 휩쓸릴까 봐 높은 곳에 있는 버드나무 가지를 잡으려고 폴짝폴짝 뛰고 있는 걸 보았습니다. 개구리가 버드나무 가지를 잡는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는 개구리 신세가 자기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리석은 개구리, 노력할걸 해야지. 너도 나처럼 네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시도하고 있구나."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해 보여 외면하려는 순간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어 가지가 개구리 쪽으로 휘어졌습니다. 그 찰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개구리가 또 한 번 펄쩍 뛰어올라 마침내 버드나무 줄기를 붙잡고 위기 탈출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망연자실한 채 한참 그곳에 서있다가 나무 앞에 엎드려 큰 절을 했습니다.

 

"아, 어리석은 건 개구리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미물에 불과한 개구리도 노력 끝에 우연을 행운으로 바꾸었거늘 어찌 난 불만만 가득해 있단 말인가"

 

자신에게 깨우침을 준 존재에 그렇게 경배를 드리고 나왔던 문으로 다시 들어가 스승에게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사죄하였습니다. 그는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열심히 공부한 끝에 일본 최고의 학자이자 서예의 명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비광 윗부분의 검은 게 버들가지이고 가운데 파란 게 개천, 왼쪽 아래 황색은 개구리, 우산 들고 있는 사람이 오노도후입니다. 어쩐지 우수에 차있는 듯한 모습의 남자와 그 옆의 개구리를 다시 한번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운이란 것도 삶에 대해 절실히 노력하는 자에게 따르는가 봅니다. 

 

이왕 화투를 조사하다 보니 그 유래까지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화투는 일본에서 유래한 게 맞습니다. 그렇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즐기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많이 시들해진 것 같은데 그래도 지하철에서 보면 스마트폰 화투 앱을 이용해 혼자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상갓집에서 새벽까지 상주와 함께 자리를 지키며 밤새 화투 치는 일이 많았고 고급 사우나나 식당에서도 일부러 고스톱 치는 이벤트를 만들어 즐기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국제공항 라운지에서도 한국사람들끼리 쪼그리고 앉아 고스톱 치는 눈살 찌푸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이제는 안 보이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사회와 직장의 모임 및 회식 문화가 바뀌고 장례 문화도 바뀌고 세태가 바뀌고 있는 걸 반영한 모습이지만 그래도 바람직한 일입니다. 

 

사회생활하면서 고스톱을 외면할 수 없어 어떻게 하면 승률을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곤 했지만 정작 48장 화투의 실체에 대해서는 궁금하기만 했지 더 이상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게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입니다. 화투의 원형으로 일본 전통 놀이인 하나후다(花札, 화찰)는 16세기 후반에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은 포르투갈에 문호를 개방하고 무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 선교사를 통해 포르투갈어로 가르타(carta 영어의 card)라고 하는 트럼프가 일본 사회에 전해져 크게 유행하게 되었습니다. 도박성이 문제가 되어 막부에서 금지령을 내리자 이를 대체해서 꽃과 새를 그려 넣은 하나 가루다(花カルタ)를 만들어 사용한 놀이가 하나후다의 원형입니다. 조선시대 후기 대마도 일본 상인들이 하나후다를 가져와 전파한 것이 한국에서는 화투로 변형되었다고 합니다. 하나후다는 화지를 겹쳐 판을 만든 후 그 위에 인쇄하는 형태인데 일본에서는 이렇게 전통적인 방법으로 하나후다를 만들고 있습니다. 슈퍼마리오 전자게임회사로 유명한 닌텐도는 원래 하나후다 제작업체로 출발한 기업입니다. 

 

화투는 일본에서 시작되었지만 한국문화로 자리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50년대를 기점으로 휴대에 용이하고 내구성이 높은 플라스틱제 화투를 만들면서 우리 문화가 되었습니다.  일본에서 가라오케가 시작되었지만 한국에서 시작한 노래방 문화가 전 세계에 퍼지면서 이를 한국문화로 간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일본의 하나후다와 우리 화투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화투는 패의 테두리와 뒷면이 붉은색이지만 하나후다는 테와 뒷면이 대부분 검은색입니다. 종이를 여러 겹으로 해서 만드는 특성으로 하나후다 두께는 화투의 2~3배 정도 됩니다. 하나후다는 적, 흑, 녹, 황, 보라 5색을 사용하며 그림이 복잡하고 상세한 반면 화투는 적, 흑, 황, 청 4색을 사용하고 그림이 단순화되었습니다. 

 

 

 

왼쪽이 한국 화투이고 오른쪽이 일본 화투입니다. 비교해보면 디자인과 색깔, 새에 대한 해석 등에서 차이점이 있습니다. 4월의 흑싸리도 일본은 등나무로 해석하고 위아래 방향이 다릅니다. 화투는 광(光), 열(閱), 단(短), 피(皮) 네 장이 한 달로 구성됩니다. 최고 통치자(광)로부터 일반 백성(피)까지를 의미하고 음력 1월부터 12월까지 총 48장이 됩니다. 아래 그림은 일본 화투 전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화투와는 11월, 12월이 바뀌어 있어 비가 11월이 되고 우리가 똥이라고 된소리로 부르는 오동나무의 11월은 12월이 됩니다. 일본에서는 18세기 말 화투의 최종본이 만들어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화투가 들어오는 과정에서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화투 속 동식물도 다르게 해석되고 있습니다. 

 

 

 

화투에 그려진 새, 나무, 사람, 동물의 모양은 4계절 변화가 반영된 것입니다. 화투에서 새가 나오는 달은 1, 2, 4, 8, 11, 12월입니다. 1월은 두루미(학), 2월의 꾀꼬리는 일본에서 동박새, 4월의 비둘기는 일본에서 두견새, 8월 기러기, 11월은 닭인데 일본에서는 봉황입니다. 두루미는 일본에서 학이라고 부른답니다. 화투의 식물은 보면 1월 소나무, 2월 매화, 3월 벚나무, 4월 흑싸리 (일본은 등나무), 5월 난초 (일본은 창포), 6월 모란, 7월 홍싸리 (일본 싸리), 8월 억새 (일본), 9월 국화, 10월 단풍나무, 11월 오동나무, 12월 버드나무가 있습니다. 화투는 일본문화의 축소판으로 동식물의 그림도 일본의 자연생태 및 세시풍속과 관련이 있습니다. 1월에 일본에서는 가도마쓰라(門松)라고 정월 초하루부터 일주일간 소나무 가지를 문 앞에 걸어두고 복을 비는 풍습이 있습니다. 이 풍속이 1월의 소나무 그림에 반영되었습니다. 매화와 벚나무는 일본의 대표 문화이고 등나무는 일본의 초여름을 상징합니다. 한국에서는 등나무를 절개 없는 나무라고 해서 그림의 소재로 쓰지 않았기 때문에 싸리나무로 대체되었고 모양도 위아래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9월의 국화는 9월 9일 중양절에 국화주 등 국화와 관련된 음식을 먹으며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래서 9월 쌍피에 수(壽) 자가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12월에 청개구리와 제비가 등장하고 6월에 나비, 7월에 멧돼지, 10월에 사슴이 나옵니다. 화투에 사람이 등장하는 건 12월뿐입니다. 하나후다에서는 일본식 의상이었지만 화투에서는 중국식 의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원래 메이지 유신 이전에는 사다구로(定九郞)라는 산적이 주인공이었는데 어느 순간 오노도후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일본 전통극 가부키에는 산적이 등장한다고 하는데 이를 빼고 교육적 의미에서 오노도후를 넣었다고 합니다. 일본 화투에서는 비가 음력 11월인데 한국에 들어오면서 12월로 바뀌고 그림도 사람, 수양버들, 제비, 청개구리 모두 심하게 변형되었습니다.

 

 

일본은 포르투갈로부터 서양문화를 처음 받아들였기 때문에 포르투갈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전 모잠비크에서 만났던 포르투갈 사람 얘기로는 일본어로 고맙습니다라고 하는 아리가또우(ありがとう, 有り難う)가 포르투갈어에서 온 말이라고 합니다. 포르투갈어로 고맙습니다가 오부리가두(Obrigado)인데 일본 사람들이 이를 따라서 아리가또우란 말을 쓰게 되었다는 겁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누군가에게 예를 표하거나 사례를 전하는 말은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가벼운 뜻으로 고맙다고 말하는 일상 표현은 없었다는 겁니다. 이를 확인해보려 했지만 아직 기회가 없는데 당시 일본 문화를 감안하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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