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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

by 77 Harvey 2020. 5. 14.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 (The Ben Franklin effect)

 

 

벤자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미화 100불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인물입니다. 벤(Ben : Benjamin의 애칭)이 역대 대통령들과 함께 달러 지폐에 그의 얼굴의 들어간 데는 충분히 그럴만한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정치인, 과학자, 외교관, 문필가로서 다방면에서 활동하였으며 미국의 독립과 건국에 혁혁한 공을 세웠습니다. 최초의 미국인이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가진 그는 18세기 신대륙의 역사와 정신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1706년 보스턴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조그만 가게 주인이었는데 두 번 결혼해서 모두 17명의 자녀를 두었습니다. 벤은 두 번째 부인이 낳은 10명의 자녀 중 8번째였습니다. 어린 시절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아버지 가게에서 일하다가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서 17살 되던 해 무작정 집을 나와 필라델피아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인쇄소 수습공으로 일하면서 밤에는 책을 읽으며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벤은 얼마 안 되어 자신의 인쇄소를 차리는 한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라는 신문을 사들여 단기간에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만들었습니다. 1732년부터 한 해의 날씨, 간단한 지식, 삶의 지혜 등을 다룬 종합안내서와 같은 연감을 펴내기 시작하였는데 이게 매년 베스트셀러가 되어 선풍적 인기를 끌고 큰 재산을 모으게 되었습니다. 인쇄업에서 부와 명성을 얻은 그는 사교모임을 결성해서 이를 통해 소방대, 도서관, 병원, 학교와 같은 공공시설을 짓는데 아낌없이 투자하였습니다. 필라델피아 대학 (현 펜실베이니아 대학) 설립을 주도하고 1751년 초대 총장이 되었는데 같은 해 주의회 의원에도 당선되었습니다. 식민지인의 단결을 호소하는 "뭉치지 않으면 죽는다(Join, or die)"라는 유명한 구호는 그의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실은 정치만화에서 나왔습니다. 1757년에는 펜실베이니아 식민지 사절로 영국에 파견되어 15년 동안 영국에 머물며 그곳 명사들과 교류하고 의회 연설을 통해 영국이 식민지에 부과하고 있던 인지세법을 철폐하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보스턴 무력충돌로 독립운동이 본격화될 때 그 선봉에 섰으며 1776년 토마스 제퍼슨과 함께 독립선언서 기초에 서명하였습니다. 신생 미합중국 대사로 프랑스에 파견되었을 때에는 프랑스의 지원과 참전을 이끌어냈습니다. 10년간 대사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이미 80세 노령이었지만 활력과 의욕이 넘쳐 있었습니다. 벤은 1787년 제헌의회에 펜실베이니아 주 대표로 참석해 헌법 제정에 참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공직생활을 마감하였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약관 20세 때 청교도인으로서 자신이 평생 지켜야 할 덕목으로 절제, 침묵, 질서, 결단, 검약, 근면, 성실, 정의, 온건, 청결, 침착, 순결, 겸손이라는 13가지를 선정하고 또한 구체적 실천사항으로는 배부르도록 먹지 않는다, 쓸데없는 말을 피한다. 결심한 것은 꼭 이행한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게 한다는 것을 정하고 이를 철저히 준수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자신이 정한 덕목을 체크하고 관리하려고 만든 수첩이 그 유명한 프랭클린 플래너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회원제 도서관의 시초, 소방서의 시초, 대학 설립, 전기 원리의 측정, 피뢰침 발명 등은 주변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관찰과 개선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 업적이었습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그는 정치와 행정, 과학, 사회활동, 문학 등 다양한 방면에서 굵직한 족적을 남겼습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은 그의 자서전으로도 유명한데 아들에게 남기기 위해 썼다지만 많은 부분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습니다. 그의 자서전은 중고등학교 필독서로 꼽히기도 합니다. 오늘 벤자민 프랭클린을 소개하는 것은 그가 자서전에서 밝힌 한 에피소드 때문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주의회 의원 시절에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동료의원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벤은 그와의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비굴하게 자세를 낮추거나 선물이나 호의를 통해 호감 얻고 싶지는 않았는데 우연히 한 기억이 떠 올랐다고 합니다. 그것은 “나에게 신세를 진 사람보다 나에게 작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이 오히려 계속해서 나에게 더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격언이었습니다. 그래서 벤은 그가 절대 거절하지 못할 약소한 부탁으로 그에게 먼저 다가갔습니다. 당신이 소장한 책을 읽고 싶은데 일주일만 빌려달라고 깍듯하게 편지를 써서 정중히 요청하였습니다. 상대 의원은 그의 요구대로 책을 내주자니 평소 자신의 감정과 맞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책 한 권 안 빌려주자니 속이 좁아 보이는 것 같아 결국 책을 빌려주게 됩니다. 책을 빌려본 벤은 며칠 뒤 감사편지와 함께 책을 돌려주었는데 그 후 상대 의원은 벤에게 정중하게 말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벤 역시 다정하고 호감 있는 태도로 답하면서 두 사람 간 관계가 회복되고 평생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자서전에서 상대에게 먼저 호의를 베풀어 내편으로 만드는 것보다 호의를 요청하는 게 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의 많은 불화와 반목은 불편한 관계를 방치하고 지속하는 데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먼저 말을 꺼내기 꺼려하는 것은 자존심이 구겨지는 것 같다던가 거절당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들고 괴로운 관계를 해결하지 못하고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려움이란 본래 자기 보호를 위해 스스로 그은 선입니다. 마음의 상처라는 것도 알고 보면 누가 나에게 준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든 형벌입니다. 요청이란 당연히 거절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거절을 많이 받을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속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올바른 리더는 거짓말을 내세우는 게 아니라 솔직하게 요청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당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먼저 생각하라"라고 당당히 요청함으로써 국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도움을 청한 사람에게 오히려 호의를 느끼게 되는 현상을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라고 부른답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가정에서도 상대가 알아서 내 마음을 헤아려달라고 기대하지 말고 당당하게 요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나 모임에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에게 대립이나 설득보다 도움을 요청해보면 효과를 볼 수 있을지 모릅니다. 벤자민 프랭클린 효과는 인간관계에서 원수 같은 사람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 훌륭한 지혜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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