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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한비자와 구맹주산(狗猛酒酸)의 교훈

by 77 Harvey 2020. 5. 10.

한비자와 구맹주산(狗猛酒酸)의 교훈

 

한비(韓非)라는 사람은 기원전 3세기 (BC 280-233) 중국 춘추전국시대 말기 한나라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중국이 자랑하는 유명 사상가의 한 사람으로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고대 법가 학파의 대표적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한비자"라는 책은 군주들이 국가를 통치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저술한 것입니다. 인간 내면의 본성을 파악해 그것을 제어함으로써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습니다. 제갈량도 죽기 직전 유비의 아들 유선에게 "한비자"를 숙독하도록 권유하였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아무리 문명이 발달했어도 그의 지혜를 그대로 빌려 쓸 수 있다는 건 수천 년이 지나도 사람의 본성은 별로 변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래서 이 책이 고전으로 불리는 이유입니다. 

 

 

 

 

당시 6국으로 나뉘어 있는 중원의 통일 야심을 갖고 있는 진왕 정(후에 진시황)은 군사를 동원해 한나라를 공격해 왔습니다. 진왕 정은 언젠가 한비자의 저술을 읽고 깜짝 놀라며 자신의 통일대업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승상 이사에게 감탄을 연발하자 이사는 한비자가 쓴 글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인재를 찾고 있던 진왕은 한비자를 얻기 위해 한을 첫 번째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한비자와 이사는 순자(荀子)에게 동문수학한 사이였습니다. 한비자는 말을 심히 더듬고 잘 꾸미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재주와 생각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썼습니다. 

 

한비자는 한나라가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걱정이 되어 여러차례 한왕에게 부국강병책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왕이 권력을 가지고도 국가를 강성하게 만들지 못하고 신하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한나라는 허영과 사치에 빠져 재능 있는 인재를 기용하지 못하고 오히려 나라를 위기로 몰고갈 인물들만 중용하고 있었습니다. 한비자는 이에 울분을 품고 고분(孤憤), 오두(五蠹), 내외저(內外儲), 설림(說林), 세난(說難) 등 십만여 자에 이르는 글을 저술하였습니다. 한왕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진나라의 공격을 받게 되자 그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항복을 자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은 한비자를 억류시킨 다음 단숨에 한나라를 공격해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한비자가 제창한 치국의 길은 법(法), 술(術), 세(勢)를 함께 구사하라는 것입니다. 법이란 관에서 공포하여 지키면 상을 받고 어기면 처벌을 받아 상과 벌이 분명하게 시행된다는 것을 백성이 믿게 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술에 대해서는 재능에 따라 관직을 주고 직책을 맡긴 다음 능력을 평가하는 것으로 마땅히 군주가 장악해야 된다고 말했습니다. 군주에게 술이 없으면 멍청하게 윗자리를 차지하는 게 되고 신하에게 법이 없으면 나라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제왕이 천하를 다스리는 도구로 법과 술을 사용하되 법은 드러내야 하고 술은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법은 널리 선전해서 집집마다 알 수 있어야 하고 술은 제왕의 마음속에 감추어 드러내지 않으면서 신하를 통제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다음 세(勢)란 지위를 가리킵니다. 세를 탈줄 알면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이용할 수 있는데 유능한 사람을 기용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지만 못난 자를 기용하면 천하를 어지럽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현명한 군주는 관리들만 잘 감독하고 백성은 직접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무줄기를 흔들면 나무 전체 잎사귀가 흔들리고 그물의 벼리를 당기면 힘들이지 않고 그물을 펼 수 있는 이치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익이 있는 곳에 백성들이 몰리고 명성을 얻을 수 있는 일에 선비들이 목숨을 건다고 설명하였습니다. 

 

한비자는 차가운 지성으로 법가사상을 집대성했고 제왕학이란 학문을 탄생시켰습니다. 군주는 막강한 권력을 가져야 하고 백성들의 감사를 바라거나 원망에도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한비자가 죽은 뒤 그의 글은 하나의 책으로 정리되어 한비자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한비자는 군왕들이 보라고 쓴 책이었습니다. 한비자는 유가 학설에 반대하면서 군주의 권술에 대해 설명하고 신하를 통제하는 이론과 방법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는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제왕학과 정치사상을 제시하였습니다. 권력을 이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인성이란 문제를 언급하였습니다. 인간의 이기심을 섬세하게 간파하고 이를 통치 이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후에 사마천은 한비자를 두고 그의 사상은 너무 가혹하고 각박하며 은덕이 부족했다고 평가했습니다. 한비자는 열등의식을 갖고 있던 이사의 모략으로 진나라 감옥에서 자결하는 마지막을 맞이하였습니다.

 

한비자의 책 중 하나에 구맹주산(狗猛酒酸)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구맹주산이라는 한자를 풀어보면 개가 사나워서 술이 시어진다는 뜻입니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에 술 빚는 솜씨가 좋은 장 씨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주막을 차려 직접 술을 팔았습니다. 그는 손님에게 친절했고 인심도 넉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집보다 장사가 잘 안 되어 술이 독채로 시어버리기 일쑤였습니다. 장 씨는 그 영문을 알 길이 없어 답답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장사 안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같은 마을의 현자로 알려진 양천이라는 사람에게 가서 자문을 구했습니다. 양천은 장 씨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고 나서 난데없이 주막 마당의 개가 사납냐고 물었습니다. 장 씨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술장사와 개가 무슨 상관이 있냐고 되물었습니다. 장 씨의 개는 사납기는 해도 도둑으로부터 주막을 지켜주고 주인을 너무나 잘 따르는 충복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양천은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어른들이 애들 손에 호리병 쥐어주고 술 받아오라고 시키게 되는데 어린애들이 사나운 개를 무서워하는 게 문제라고 말하였습니다. 애들은 개가 사나우면 피해서 딴 집으로 가게 되니까 술맛이 아무리 좋고 주인장이 친절해도 소용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마시는 술도 아닌데 술맛이 좋다는 건 애들이 찾아갈 이유가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술이 제때 팔리지 않으니까 술맛이 점점 시큼해져서 잘 빚은 술도 제 맛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한비자는 나라를 위해 유능한 신하가 기용되지 못하는 현실을 구맹주산에 비유하였습니다. 군주가 아무리 훌륭한 신하를 중용하려 해도 조정 안에 설치는 간신배들이 있으면 어쩔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가의 올바른 정책은 점점 부패해지고 악취를 풍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권력자 따르는 무리를 일컬어 주구 세력(走狗勢力)이라고 하는데 한자로 보면 주인을 쫓는 개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권력 주변에 주구 세력들이 인의 장막을 치고 있다면 권력자는 병풍에 가려 현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민의 소통도 어려워져 인재들이 곁을 떠나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대기업 경영이나 조그만 점포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매출이 늘지 않는지 이유를 알기 어려울 때가 많지만 가까운 곳에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매장에서 고객을 대하는 점원 한 명이 불친절해서 전체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 사나운 개의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매장이 지저분해서 고객의 기분을 언짢게 하거나 상품의 포장이 취약한 게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영업에 차질을 빚지나 않을지 주변부터 돌아봐야 합니다. 기술도 중요하고 품질도 중요하지만 최종적으로 고객에게 제품을 파는 영업에 전사적으로 매달려야 합니다. 고객의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전사적인 마케팅 전략이 있어야 합니다. 고객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고객을 만족시키겠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도 그 내면에 사나운 개가 있다면 시어진 술처럼 자신의 장점이 빛을 잃게 될 것입니다. 모난 성격으로 사교성이 부족하거나 고집이 세고 타협을 모른다면 자기 실력을 펼칠 기회조차 만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아무리 내용이 중요해도 타인에게 전달되어 지는 모습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개인이나 조직이 무너지지 않으려면 사나운 개가 아니라도 주변의 사소한 것부터 관리해야 될 것입니다. 몸통이 흔들리지 않게 자신의 작은 꼬리들을 단속해야 합니다. 

 

예전에 한번 쓴 글을 다시 정리하면서 최근 언론에 비쳤던 구맹주산(狗猛酒酸)관련 기사를 검색해보니 정작 본인 스스로 사나운 개 밖에 되지 않는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반대되는 상대방을 헐뜯는 데 이를 인용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바른말을 할 수 있어도 한비자가 이사의 모략으로 비극을 맞이하였던 것처럼 옳고 그르다는 것도 힘 있는 자와 모략가의 손에 놀아날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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