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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내 버킷 리스트의 하나는 노래 부르기입니다.

by 77 Harvey 2024. 4. 17.

 

내 버킷 리스트의 하나는 노래 부르기입니다. 

 

나이 먹고 보니 버킷 리스트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내 버킷리스트에 무얼 담을까 하는 데에도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뭐든지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이제는 시간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게 점점 더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아무에게도 공개할 수 없어 속으로 간직하고 있는 리스트가 있는 반면 '소확행'이라고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아보는 작은 이벤트들이 있습니다. 내게는 그런 이벤트 중에 다른 사람 앞에서 노래 불러보기가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지만 내게는 그렇지 않은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우리 국민학교 때는 한 반에 70-80명이 함께 공부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을 하나하나 챙겨볼 수 없는 숫자입니다. 나는 어렸을 때 공부 잘해서 우등생이었는데 음악과 체육이 문제였습니다. 어릴 때는 몸이 작고 약해서 운동을 잘하지 못했고 성격이 용하고 수줍어해서 남 앞에 나서지 못하고 음악적 재능이 없었습니다. 4학년 때쯤인가 음악시간에 한 명씩 나가서 노래 불러보라고 해서 마지못해 나가게 되었는데 한 소절 끝나기도 전에 애들이 웃고 난리 나는 바람에 나는 홍당무가 되어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남 앞에서 거의 노래 부르지 못했습니다. 군대 신병시절에는 끝까지 부를 수 있는 알고 있는 노래도 없고 해서 "노래할래, 기압 받을래" 하면 그냥 엎드려뻗치는 게 마음 편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이 좋아져 노래방기기가 생기고 난 후 나도 조금씩 노래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버킷리스트에는 해외여행도 있을 거고 남이 안 가는 지역에 가보거나 오로라나 빙하를 보러 간다든지 아니면 아프리카 사파리를 보러 간다든가 또는 높은 산에 올라본다든가 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힘들게 찾아간 곳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오로라가 일상일 것이고 카리브해 사는 사람들에게는 파란 하늘과 바다가 모두 일상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는 노래 부르기가 아무렇지 않은 일상일 수 있지만 내게는 큰 용기와 준비가 필요한 일입니다. 게다가 노래 부를 수 있는 용기가 있다고 해도 이왕이면 잘 불러보고 싶습니다. 남들이 웃는 대신 잘했다 하고 칭찬하고 격려해 주는 박수를 받고 싶습니다. 음정이나 박자 모두 음악적 소질이 있어야 되는 일이지만 다른 사람들 경우를 보니 일반인이라면 대부분 그런 소질 없기는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래도 남 앞에 나서려면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조금 틀려도 조금 못해도 당당하게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분당노인종합복지관 수업 중에 '팝송 부르기'가 있습니다. 코로나 전에 몇 학기 들었고 이번에 다시 첫 학기 수업받게 되었습니다. 쉬운 노래도 있고 어려운 노래도 있지만 대부분 조금씩 알던 노래들이어서 배우기 재미있습니다.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수업보다 그래도 내쪽에서 입으로 부르며 참여하는 수업이 즐겁습니다. 두 시간 수업 중에 두 번째 시간은 원하는 수강생들에게 노래 부를 수 있는 기회를 줍니다. 대부분 잘 안 하려 하지만 다른 사람 권유에 의해 마지못해 나가거나 자의 반 타의 반 나가서 노래 부르는 회원들이 있습니다. 회원들이 참여해서 수업 시간 만들어간다는 게 참 좋아 보입니다. 나도 한번 참여해 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지난달 처음으로 이태리 칸소네인 '노노레따'를 불렀는데 어제 수업시간에서는 멕시칸 이민자들의 애환을 노래했다는 '돈데보이'를 불러보았습니다. 내가 스페인어를 하기 때문에 가사 내용을 알면서 발음을 제대로 낼 수 있다는 건 유리한 점입니다. 그래도 노래 잘 부르기 위해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확실히 많이 불러보니 점점 더 멜로디나 가사가 머리에 들어오고 입에도 맞아져 갑니다.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었으면 젊은 시절 중남미에서 해외 근무할 때 큰 도움 되었을 텐데 이걸 7학년 되어서야 하고 있으니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노래 부를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습니다. 선생님과 수강생 동료들이 손뼉 쳐주고 칭찬해 주어서 더욱 힘이 납니다. 이렇게 해서 내 버킷 리스트의 하나를 해치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노래 부르기가 더 이상 어려운 도전이 아닌 일상이 될 수 있도록 계속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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