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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타면자건 (唾面自乾)

by 77 Harvey 2020.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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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지인들과 함께 하는 카톡방에서 옥신각신 투닥거린 일이 있었는데 한동안 기분이 안 좋았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7학년이 되어서도 아직도 그럴 일이 남아 있는지 못내 찜찜하고 후회스러웠다. 블로그를 정리하다 보니 예전 올렸던 글이 하나 눈에 들어와 여기 다시 소개해 본다. 

 

* 타면자건(唾面自乾)

 

중국 당나라 관리 누사덕(婁師徳)은 마음이 넓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성품이 따뜻하고 너그러워 아무리 화나는 일이 생겨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는 동생이 높은 관직에 임용되자 그를 조용히 불렀다. "우리 형제가 함께 출세하고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어 남의 시샘이 클 터인데 너는 어찌 처신할 생각이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동생이 대답하기를 "남이 내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화내지 않고 닦겠습니다" 동생의 대답에 형이 나지막이 이렇게 타일렀다. "내가 염려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침 같은 것은 닦지 않아도 그냥 두면 자연히 마를 것이야" 화가 나서 침을 뱉었는데 그 자리에서 닦으면 더 크게 화를 낼 것이니 닦지 말고 그대로 두라는 당부였다. 사자성어 타면자건(唾面自乾)에 얽힌 고사이다.

 

누사덕의 지혜를 오늘날 가장 완벽하게 실천한 지도자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일 것이다. 그는 대국민 직접 소통에 나서 개인 트위터 계정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의 개인 트위터 계정에는 온갖 모욕적 악플이 범람했다. 심지어 "검은 원숭이", "원숭이는 우리로 돌아가라"는 흑인 비하 댓글도 있었다. 하지만 오바마는 자신을 겨냥한 저급한 비방을 지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사이버 침이 SNS에서 그냥 마르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오바마의 놀라운 포용 정치가 빛을 발한 일이 또 있었다. 백인 청년의 무차별 총기 난사로 숨진 흑인 목사 장례식에 참석한 일이 있다. 추모사를 읽던 오바마가 잠시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더니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을 부르기 시작했다. 반주도 없었다. 

 

Amazing Grace, How sweet the sound

That saved a wretch like me

I once was lost, but now am found

T'was blind but now I see.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6천여 명의 참석자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두 일어나 찬송가를 함께 따라 불렀다. 어떤 흑인 여성은 오바마를 손짓하며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은 연설 도중 희생자 9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그들이 신의 은총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TV로 지켜보던 국민들의 박수소리가 아메리카 전역에 울려 퍼졌다.

 

포용이란 말처럼 쉽지 않다. 고통스러운 인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내의 忍은 심장(心)에 칼날(刃)이 박힌 모습을 본뜬 글자다. 칼날로 심장을 후비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이 바로 인내다. 험난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누구나 가슴에 칼날 하나쯤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참느냐 못 참느냐, 거기서 그 사람의 됨됨이가 결정 난다. 그러나 누구나 누사덕, 오바마 같은 인격을 갖추기 어렵다. 요즘처럼 잠이 잘 안와 설치는 날이면 아주 옛날 일, 억울했던 일들이 순간순간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잠도 안 오는데, 왜 그런 기억들이 내가 부르지도 않는데 마음대로 떠오르는지 알 수 없다. 잊고 싶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순간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있는데 금방 그 조차도 후회된다.

 

몇 년 전 경주 양동마을에 들린 적이 있다. 경주 손 씨와 여강 이 씨 두 가문이 500년간 대를 이어 현재까지 살고 있는 우리나라 대표적 전통마을이다. 양동마을에는 초가집도 있지만 품위 있어 보이는 고택들이 상당수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다. 대표적인 가옥이 서백당(書百堂)인데 이 고택은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가 1459년에 지은 가옥이다. 당호가 된 서백의 뜻은 하루에 참을 인(忍) 자를 백번 쓴다는 뜻이라고 한다. 화가 날 때마다 참을 인자 세 번만 외치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한 번도 실천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코로나가 비껴가면 양동마을을 다시 한번 찾아가 보고 싶다.

 

 

 

양민공 손소의 서백당이다. 가운데 벽 오른쪽은 여인네가 거처하는 곳이어서 낮은 벽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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