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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오계(五計)와 오멸(五滅)

by 77 Harvey 2020.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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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단체 카톡방으로 배달되어 온 법륜스님의 잘 늙는 방법에 대한 강론을 보다가 오래전 읽었던 오계와 오멸이 생각났습니다.  

 

송나라 학자 주신중(朱新中)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섯 가지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오계론(五計論)"을 펼쳤습니다.
   
첫째, 생계(生計) : 참되게 살아가기 위한 계획
둘째, 신계(身計) : 병마나 부정으로부터 몸을 보전하는 계획
셋째, 가계(家計) : 집안을 편안하게 꾸려가는 계획
넷째, 노계(老計) : 멋지고 보람 있게 늙는 계획
다섯째, 사계(死計) :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는 계획

 

특별히 다섯째인 사계(死計)에서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계획을 세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다섯 가지 인연과 작별하는 일이라고 얘기하는데 이를 오멸(五滅)이라고 말했습니다.  

 

첫째, 멸재(滅財) : 재물과 헤어지는 일입니다. 살아서 마련한 재산에 미련을 두고서는 편하게 눈을 감을 수가 없습니다. 재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일이 멸재(滅財)입니다.
둘째, 멸원(滅怨) : 남과 맺은 원한을 없애는 일입니다. 살아서 겪었던 남과의 불미스러운 관계를 씻어내야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습니다. 남과의 다툼이 있었다면 그 다툼에서 비롯된 원한을 씻어내는 일이 멸원(滅怨)입니다.
셋째, 멸채(滅債) : 남에게 진 빚을 갚는 일입니다. 빚이란 꼭 돈을 꾸어 쓴 것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큰 도움을 받았다면 그것도 빚입니다. 살아있을 때 남에게 받았던 도움을 깔끔하게 갚는 일이 멸채(滅債)입니다.
넷째, 멸정(滅情) : 정든 사람, 정든 물건과의 작별하는 일입니다. 아무리 정들어도 함께 갈 수가 없고 가지고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정든 사람, 정든 물건과 작별하는 일이 멸정(滅情)입니다.  
다섯째, 멸망(滅亡) : 죽는 것이 끝이 아니라 죽음 너머에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신념이 멸망(滅亡)입니다.

 

이야기 하나 올리겠습니다. 명종(明宗) 때 홍계관(洪繼寬)이라는 소문난 점쟁이가 있었습니다. 그가 사람이 죽는 해 죽는 달까지 맞힌다 하여 상류사회 가마들이 그 문전에 줄지어 서서 기다릴 정도였습니다. 상진(尙震) 정승도 이 점쟁이로부터 죽는 연월을 점쳐두고는 그 3년 전부터 편안하게 죽을 수 있게끔 사계(死計)를 세워 챙겨나갔습니다. 당시 지식층에서는 어떻게 해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하느냐라는 사계(死計) 문화가 번져 있었습니다. 이는 송나라 학자 주신중(朱新仲)의 오계론(五計論) 영향을 받아 '오멸(五滅)’이라는 노후 철학이 팽배하였기 때문입니다. 상진 대감은 이렇게 오멸 철학을 실천하며 죽음을 겸허하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죽는다는 연월이 지나도 죽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홍계관을 불러 맞지 않은 점괘를 두고 따지자 “죽을 운명을 좌우하는 것은 오로지 남에게 알리지 않고 베푼 음덕(陰德)뿐입니다”라며 생각나는 음덕 베푼 일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임금님 수라간에서 금 밥그릇을 훔쳤다가 들킨 별감(別監)에게 장물은 현장에 갖다 놓게 하고 은밀히 사형을 면하게 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상진 대감은 그 음덕으로 15년간 더 살았다고 하는데 음덕 덕분이라기보다는 오멸(五滅) 철학을 실천한 정신적 안정 때문에 오래 살지 않았나 하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따라 다른 카톡방에서도 멸정(滅情)에 대한 얘기가 올라왔기에 그냥 전부 옮겨 보겠습니다. 

 

젊었을 적부터 유 초시는 부인 회천 댁을 끔찍이 생각해 우물에서 손수 물을 길어다 부엌에 갖다 주고, 동지섣달이면 얼음장을 깨고 빨래하는 부인이 안쓰러워 개울 옆에 솥을 걸고 장작불을 때 물을 데웠다. 봄이 되면 회천 댁이 좋아하는 곰취를 뜯으러 깊은 산을 헤매고 봉선화 모종을 구해다 담 밑에 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장날이 되면 유 초시는 회천 댁이 좋아하는 검은 깨엿을 가장 먼저 사서 조끼 주머니에 넣었다. 이러니 회천 댁은 동네 여인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단 하루라도 회천 댁처럼 살아봤으면 한이 없겠네.” “회천 댁은 무슨 복을 타고나 저런 신랑을 만났을꼬.” 회천 댁도 유 초시를 끔찍이 사랑해 봄이면 병아리를 서른 마리나 사와 정성껏 키워 유 초시 상에 백숙을 올리고, 바깥출입도 없이 유 초시를 하늘처럼 받들었다. 부부는 슬하의 삼남 일녀를 모두 혼례를 치러 세간을 내고 맏아들 내외와 살며 열 손가락으로 꼽기에 넘치는 친손과 외손을 두었다. 살림살이는 넉넉하고 속 썩이는 식솔도 없어 유 초시는 오십 초반에도 얼굴에 주름 하나 잡히지 않았다. 친구들은 거의 모두가 젊은 첩을 얻었건만 유 초시는 오로지 회천 댁뿐이다. 유 초시는 요즘도 장날 저녁상을 물리고 나면 품속에서 검은 깨엿을 꺼내 회천 댁 손에 쥐여주고 회천 댁 치마끈을 푼다. 기나긴 운우의 정을 나눈 후 땀에 흠뻑 젖은 회천 댁이 베갯머리송사로 “한평생 나리의 사랑을 듬뿍 받아 소첩은 죽어도 한이 없습니다. 첩을 얻으셔도…” 하면 유 초시는 그때마다 입맞춤으로 회천 댁의 입을 막았다. 

어느 날, 밥맛이 없다며 상을 물린 유 초시는 외출하고 돌아와 저녁상도 두어숟갈 뜨다 말더니 그날 밤 잠을 못 자고 한숨만 쉬었다. 이튿날부터는 사람이 달라졌다. 회천 댁이 찬모를 제쳐 놓고 정성껏 차려 온 상을 간이 맞지 않는다고 던져 뜨거운 국물이 쏟아지는 바람에 회천 댁은 팔에 화상을 입었다. 한평생 말다툼 한번 없었던 사이에 이게 어찌 된 일인가! 그 점잖던 유 초시 입에서 천박한 욕지거리가 예사로 튀어나왔다. “저년을 데리고 한평생 살아온
내가 바보 천치지!” 한집에 사는 맏며느리 보기가 부끄러워 회천 댁은 홍당무가 되었다. 유 초시는 이제 잠도 사랑방에서 혼자 자더니 어느 날 “첩 살림을 차렸으니 찾지 마” 한마디를 남기고는 집을 나갔다. 회천 댁은 눈물로 나날을 보내다 어느 날부터인가 이를 악다물고 “그놈의 영감탱이 눈앞에 안 보이니 속 편하네” 하며 생기를 찾았다. 집을 나간 유 초시가 한 달 만에 돌아왔다. 손자 손녀들과 아들 내외가 맨발로 마당을 가로질러 반겼지만 회천 댁은 나오지 않았다. 유 초시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눈은 빨갛고 얼굴은 검고 팔다리는 살이 쪽 빠졌는데 배는 불룩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삼일 만에 이승을 하직했다. 정나미가 떨어진 회천 댁은 49재 내내 눈물도 나지 않았다. 가장이 된 맏아들이 삼베 두건을 쓴 채 장 보러 갔다 와서 제 어미 방에 검은 깨엿을 놓고 갔다. 한입 깨물다가 눈물이 쏟아져 회천 댁은 보료 위에 엎어졌다. 봄이 되자 맏아들이 곰취를 한가득 따왔다. 어디서 구했는지 봉선화 모종을 가져와 담 밑에 심었다. 그날 밤 회천 댁이 맏아들을 불러 앉혀 놓고 다그쳤다. 딱 잡아떼던 맏아들이 마침내 털어놓았다. “아버님께선 의원한테 죽을병이라는 걸 듣고 정을 떼려고 어머니께 그렇게 모질게 대했던 겁니다. 제게 당부를 하시더군요. 장에 가면 깨엿을 사다 드리고 봄이 되면 곰취를 따다 드리고 담 밑엔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꽃, 봉선화를 심으라고….” 회천 댁의 대성통곡에 맏아들도 목이 잠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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