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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Forget & Forgive

by 77 Harvey 2020.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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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어서인지 잠이 잘 오지 않습니다. 주변에 보면 이런저런 약에 의존한다는 얘기들을 합니다. 초저녁에는 정신없이 졸리다가 막상 침대에 들어서면 잠들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자꾸 잠을 깨게 됩니다. 잠이 깨면 일어나 무슨 일이든 하면 좋으련만 일어나 봤자 불편하니 그냥 잠을 더 청해보는데 그러면 비몽사몽간에 이런저런 수많은 생각과 기억들이 지나갑니다. 그럴 때 기분 좋은 일들이 생각나면 좋겠는데 왜 생각하기 싫은 장면들만 문득문득 떠오르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 때, 중고등학교 다닐 때의 일까지 생각나고 직장생활, 가족관계, 친구관계 등 수많은 일들이 순서 없이 지나가곤 합니다. 

 

오래전 신입사원 교육받을 때 강사로 오셨던 분이 있습니다. 온몸에 화상을 입어 귀가 없고 코가 문드러진 흉측한 몰골이었던 그분이 자신의 삶에 대해 얘기를 시작하자 많은 사람들이 눈물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분은 6.25 때 함경도에서 단신 월남해 천막교회 한 귀퉁이에서 새우잠 자며 어렵게 공부하면서 서울시립농대 수의학과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는 졸업 후 덴마크로 유학을 다녀와서 농촌계몽과 의료복지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해외유학을 다녀왔다 하면 상당한 인텔리로서 장래가 촉망되는 위치였습니다. 그런데 1968년 그가 30살 되던 해 교통사고와 차량 폭발로 전신에 3도 화상을 입게 되어 30차례 넘는 성형수술 끝에 한쪽 눈을 잃고 손가락까지 오그라 든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절망을 딛고 병석에서 일어나 의료복지운동을 다시 시작했고 후에 두밀리 자연학교를 세워 어린이 교육사업도 벌였습니다. 나병환자처럼 보여 일반버스조차 태워주지 않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작고하셨지만 그분은 채규철(蔡奎哲) 교장선생님입니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절망의 무게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클 텐데도 밝은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삶과 희망에 대해 얘기하면 듣는 사람 모두 감동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분이 했던 말이 생각나곤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는 'F'로 시작하는 단어 2개가 꼭 필요해. 하나는 'Forget'이고 다른 하나는 'Forgive'야. 사고 후에 그 고통을 잊지 않는다면 나 지금처럼 못살았을 거야. 잊어야 해. 잊어야 그 자리에 또 새 걸 채울 수 있지. 이미 지나간 일 누구 잘못이 어디 있어. 내가 용서해야 나도 용서받을 수 있는 거야" 저는 여러 기회에 그분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 인생에서는 'Forget'과 'Forgive', 2개의 F가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전했습니다. 다들 공감은 하지만 "용서? 웬만해야 용서하지, 잊어?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하는 말도 많이 합니다. 진짜 말이 쉽지, 용서하고 잊는다는 게 우리 보통사람들에게는 참 실행하기 어려운 주문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누구나 용서할 수 있다면 그건 용서가 아니다. 모두가 잊을 수 있는 거라면 잊은 게 아니다. 용서할 수 없는 걸 용서해야 진짜 용서이고 잊을 수 없는 걸 잊어야 진짜 잊은 것이다"라는 생각입니다. 잊자, 잊을 수 없고 괴롭지만 잊어보자. 그리고 용서하자, 용서할 수 없고 괘씸하고 원통하지만 진짜 마음으로부터 용서해보자. 사실 잊는다는 건 인간에게 주어진 특별한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잊을 수 있다면 우리 인생사에 무슨 갈등이 남아 있겠습니까? 괴롭거나 억울하거나 화나는 일이 계속해서 생각나고 그 생각은 다시 증폭되어 내 마음을 지배해버리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잊을 수 있다면 좋겠는데 왜 잊히지 않는 걸까? 그러나 사실 대부분은 다 잊고 지내고 있습니다. 잊고 있으니 무심하게 일상을 지낼 수 있지만 문득문득 떠오른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래도 잊으려고 노력하면 잊힙니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애써 떨치려고 노력하는 게 좋습니다. 잊는다는 것만큼 중요한 게 용서하는 일입니다. 용서를 하면 스스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절대 잊을 수없고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평안을 바란다면 잊고 용서하는 게 바람직할 것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우리가 남을 용서하기 이전에 우선 자기 자신부터 용서할 수 있어야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불쾌한 옛날 생각들이 무의식적으로 자꾸 떠오르는 건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잘못된 선택과 행위를 하게 됩니다. 아마 스스로 남보다 성공적인 삶이었다고 자부할지라도 혼자 상념에 빠지게 되면 친구 관계나 사람 관계에서 그래도 아쉬운 일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일들에 후회하고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면 잊힐 수 있을 것이고 다시 생각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없다는 것도 뒤집어보면 자신에 대해 화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막말로 통쾌하게 복수하거나 본때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 자신에 대한 책망일 것이고 그런 게 지금 와서 생각나니 생각할수록 화가 난다는 게 아닐까요? 내가 못난 사람이어서 그랬다거나 모든 일을 자신의 책임으로 여기라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못난 사람이라는 책망일랑 이제 그만하고 자기 자신을 용서해주라는 얘기입니다. 자존심 센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엄격해서 자신을 용서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후회가 몰려오는 것일 텐데 이제 그만 자신을 용서하고 놓아주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렇게 얘기해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제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는데 억울하다고 생각되는 일, 아쉽다고 생각되는 일, 분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있더라도 나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한다면 모두 다 잊힐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이제 모두 다 잊고 자신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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