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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법정스님의 길상사 진영각(眞影閣)

by 77 Harvey 2020. 7. 14.

길상사 진영각의 법정스님

 

법정스님의 무소유 철학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길상화 보살 김영한 님이 법정스님에게 자신이 운영하던 요정 대원각을 청정한 불가 도량으로 만들어 줄 것을 청하였습니다. 무소유를 주창하는 법정스님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1987년부터 계속된 요청 끝에 그 뜻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1995년에 송광사 말사 대법사로 등록하였습니다. 97년에는 이를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이름을 바꾸어 등록하고 도량을 정비한 후 97.12.14일에 길상사 창건법회를 열었습니다. 

 

엊그제 길상사 관련 포스팅을 했었는데 백석과 자야 두 사람 외에도 법정스님에 대해 찾아보고 싶은 게 있어 추가로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길상사 북쪽 끝 언덕바지에는 법정스님이 거처하던 곳에 영정과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진영각(眞影閣)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다 간 분입니다. 철저한 구도정신으로 청빈한 삶과 무소유의 마음가짐을 몸소 실천하였습니다. 그가 쓴 수필집 '무소유'는 그의 철학을 담은 책입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는 아무것도 안 가진다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안 가진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탐욕을 경계한 것입니다. 무소유라는 글에서 보면 법정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난초 두 분을 선물해서 정성스레 기르게 되었다는데 외출할 때나 언제나 그 난에 신경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법정 스님은 그것이 집착임을 깨닫고 그 후부터는 하나씩 버리는 마음으로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까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인다는 뜻이다.

필요에 따라 가졌던 것이 도리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맨다고 할 때

주객이 전도되어 우리는 가짐을 당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흔히 자랑거리로 되어 있지만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측면도 동시에 지니고 있다.

 

빈 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 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는 것이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행복의 척도는 필요한 것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는가에 있지 않다.

불필요한 것에 얼마나 벗어나 있는가에 있다

 

소유에 집착하면 그 집착이 우리들의 자유를

우리들의 자유로운 날개를 쇠사슬로 묶어버린다.

그것은 또한 자기실현을 방해한다.

 

물건은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한다.

소유물은 오히려 우리를 소유해버린다.

 

꽃이나 새는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는다.

저마다 자기 특성을 마음껏 드러내면서 우주적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이다.

 

(법정스님의 말씀 중에서)

 

 

 

 

 

법정스님은 속명 박재철로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나 일찍 아버지를 여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전남대 상대에 진학했지만 같은 민족끼리 총부리를 겨누는 한국전쟁을 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실존적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956년 송광사에서 효봉스님 문하로 법정이란 법명을 받고 불가에 귀의하였습니다. 효봉스님은 법정에게 무소유의 가르침을 준 부모님 같은 스님입니다. 그는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1호 판사였다가 자신의 판결로 사람의 목숨이 좌우된다는 점에 충격을 받고 엿장수로 떠돌다 불가에 귀의한 인물이었습니다. 법정스님은 불교사전 편찬 작업을 하는 한편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인혁당 사건으로 상심한 후 1975년에 출가 본사인 송광사에 내려와 수행을 하면서 혼자 지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1976년에 그전 동아일보에 실었던 '무소유' 제목의 수필과 그간의 수필을 포함해서 '무소유' 제호의 수필집을 출간했는데 이게 330만 부 판매되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어 법정스님은 수필가로서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1994년에 법정스님은 순수 시민단체인 '맑고 향기롭게'를 발족하고 대중강연에 나섰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과 세상과 자연을 본래 모습 그대로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아가고자 함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을 받은 김영한 길상화 보살님이 7천여 평의 대원각을 시주해서 1997년에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2010년 폐암으로 길상사에서 세수 79세에 입적하면서 유언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모든 출판물을 더 이상 출판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법정스님 산문집

영혼의 모음 (1972), 무소유 (1976), 서 있는 사람들 (1978), 말과 침묵 (1982), 산방한담 (1983), 물소리 바람소리 (1986), 텅 빈 충만 (1989),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1990), 버리고 떠나기 (1993),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1996), 오두막 편지 (1999), 홀로 사는 즐거움 (2004), 맑고 향기롭게 (2006)

 

 

법정스님의 가르침을 기리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맑고향기롭게

맑음은 개인의 청정을, 향기로움은 그 청정의 사회적 메아리 맑고 향기롭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우리의 마음과 세상과 자연을 본래 모습 그대로, 맑고 향기롭게 가꾸며 살아가기 위��

www.clean94.or.kr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서 북쪽 끝 언덕바지에 오르면 진영각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영정과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는 곳입니다.   

 

 

법정스님이 자주 사용하던 낡은 나무 걸상 모형과 방명록이 있습니다.

 

 

진영각 앞 조그마한 뜰에는 모란이 심어져 있는데 열매를 맺고 있었습니다. 모란은 5월에 꽃이 핀 후 지면서 열매를 맺어 영글게 되면 터지면서 까만 씨가 나오게 됩니다. 그 옆에는 울릉도가 원산지라는 섬초롱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아미타불 부처님을 모신 극락전 옆으로 참나리기 피어있고 그 위에는 능소화가 활짝 펴 있었습니다.

 

 

 

 

 

 

길상사 공덕주 길상화 보살님에 관해 전해지는 얘기 중에 틀린 점도 다소 있는 것 같아 길상사 홈페이지에서 찾은 소개문을 가져왔습니다.

 

 

 

 

* 이전 글 참조

 

성북동 길상사

성북동 길상사로 출사 다녀왔습니다. 어제 토요일에 빛사냥 친구들과 성북동 길상사(吉祥寺)로 출사 다녀왔습니다. 예전에 간 적 있지만 한번 더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4호선 한성대 입��

77spal.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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