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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문도 (El Mundo)

모잠비크 숙소에서 비빔밥 만들기

by 77 Harvey 2020.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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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잠비크 숙소에서 비빔밥 만들기

 

아프리카 모잠비크 체류 때 얘기를 하나 더 가져왔습니다. 어느 주말에 그동안 별러 왔던 비빔밥에 도전해보기로 하였습니다. 평소 한식을 먹지 못하고 있어 아무래도 입맛이 허전한데 시원한 야채를 밥에 넣고 고추장으로 진하고 맵게 한번 비벼 먹어보면 속이 다 시원해질 것 같은 상상이 맴돌았습니다. 허지만 콩나물, 고사리 같은 야채가 없는데 상추 정도로 비빔밥이 가능해질 것인지 자신이 없어 생각만 하고 미루어왔습니다. 그전에 시험 삼아 갓 지은 따뜻한 밥에다 상추 조금 넣고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보았더니 혀끝에 매운 밥맛이 남아 있는 게 제법 괜찮다 싶었습니다. 야채를 그냥 적당히 넣고 비비기만 해도 비빔밥이 될 거 같아서 플랫 메이트들에게 한국의 대표적 전통 한식인 비빔밥을 선보여주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포르투갈 사람인 젊은 친구는 내가 만드는 한식에 관심이 많아서인지 맵다 하니까 불안해하면서도 큰 기대를 보이며 자기가 디저트를 준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마푸투에 한식당이 있으면 자주 가보면서 비빔밥을 어떻게 내놓는지 볼 수 있을 텐데 머릿속의 기억과 인터넷에 있는 레시피에 의존하려니 불안했습니다. 한 번은 상추를 씻어 밥에 비비려니까 잎이 커서 잘 안 비벼지는 게 아하 야채를 잘게 썰어주어야 잘 비빌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을 비비려면 큰 그릇이 있어야 되겠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에어비엔비 숙소에는 접시밖에 없어서 냄비나 바가지에 넣고 한꺼번에 비빈 후 나눠주는 게 좋겠다는 그림도 그려졌습니다. 그런데 비빔밥에 들어가는 식재료들이 생야채였는지 익힌 야채였는지 가물가물 생각이 안 나는 거였습니다. 콩나물이야 조리한 것이겠지만 그건 없으니 어쩔 수 없고 캬베츠, 오이, 파프리카, 홍당무, 양파 등 그곳에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려는데 이걸 익혀야 하는지 그냥 넣는 건지 몇 개 레시피를 읽어보아도 확실한 감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일단 처음이니까 한번 시도해보기로 하고 파프리카, 오이, 상추는 생으로 캬베츠, 파, 양파, 홍당무는 따로 살짝 볶아서 준비하였습니다. 어느 레시피를 보니 해바라기 씨를 넣어주면 씹히는 식감이 좋다 해서 해바라기 씨 대신에 캐슈너트를 잘게 부숴 넣기로 하였습니다. 야채 외에 잘게 간 고기 같은 걸 밥 위에 올려주면 좋겠는데 그건 귀찮아서 포기하고 대신 통조림 참치로 참치 비빔밥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계란 프라이도 하나씩 밥 위에 올려 넣고 먹을 수 있게끔 준비하였습니다. 

 

숙소에 청소하러 오는 아줌마에게 도와달라 부탁해서 야채를 볶고 밥도 새로 짓고 해서 준비를 마치고 메이트들을 불렀습니다. 플라스틱 보울이 큰 게 두 개 었어서 한쪽은 덜 맵게 다른 한쪽은 고추장을 조금 더 넣어 맵게끔 두 개 버전으로 만들어 각 보울에 야채를 넣은 후 일단 인증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그릇도 안 맞고 밥 위에 여러 야채를 올려놓은 겉모양이 너무 볼 품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비빔밥 사진들과 비교해 보면 영 딴판이어서 이게 그냥 생각만으로 되는 건 아니구나 하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포르투갈인 메이트에게도 한번 비벼 보라 하고는 보울 하나와 숟가락을 주었습니다. 큰 보울에서 밥, 야채, 참기름, 참치와 고추장을 넣고 비볐더니 비빈 모양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맛을 보니 맛도 그런대로 괜찮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다국적 플랫 메이트들은 조금 맵지만 맛있다 하면서 건강식 같다고 자기네 포르투갈 음식에도 한번 적용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합니다. 한국의 국력이 올라가니 한식의 격도 따라 올라가서 매운 맛이나 김치와 같은 전통 음식도 글로벌하게 거부감 없이 다른 문화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비빔밥은 맛이나 건강식이란 점에서 아주 좋은 음식입니다. 우리 국적 비행기에서 기내식으로 비빔밥 메뉴가 확고히 자리 잡은 게 증명하고 있는 일입니다. 웰빙 바람을 타고 세계 항공업계 콘테스트인 기내식 어워드에서 1등 한 경력도 있다고 합니다. 

 

비빔밥의 기원은 16세기 때 밥에 고기와 채소를 넣고 비벼 먹던 것을 혼돈반(混沌飯)이라고 불렀다는 게 가장 오래된 기록인가 봅니다. 지난번 안동에 갔을 때 그곳에서 유명한 향토 음식이 헛제삿밥이라고 해서 먹어보니 그냥 비빔밥이었습니다. 유래를 찾아보니 원래 안동에는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비벼서 먹는 관습이 있었는데 그곳에 발령받아간 미식가 사또가 그 비빔밥을 달라고 졸라대니까 그냥 제사음식 재료로 대충 만들어 줬더니 그게 아니라며 성을 냈다고 합니다. 제사 지내고 남은 밥에는 제사 지낼 때 피운 향내가 배는 데 그 향내가 나지 않아 가짜라고 화를 냈다는 것입니다. 제사 음식으로 비벼먹는 밥이 너무 맛이 있었던 모양이어서 그다음부터는 제사 지내지 않았어도 제사음식만 차려 비벼먹는 헛제삿밥이 안동의 명물 향토음식이 되었다고 합니다.

 

 

비빔밥 식재료들을 펼쳐 놓으니 한 상 가득해졌습니다.

 

 

덜 매운 버전으로 한 보울 비비기로 하고 아래 사진처럼 매운 버전으로 한 보울 더 비비기로 하였습니다.

 

 

접시에 덜어 한 입 먹어 봤더니 오랜만에 매운 거 먹게 되어 그런가 입맛이 다 개운해졌습니다. 

 

 

 

포르투갈인 메이트가 푸딩을 준비했는데 계란, 우유, 캐러멜, 설탕 등을 넣고 아주 맛있게 잘 만들었습니다. 이 친구는 원래 집에서 식당을 했었다며 어렸을 때 엄마가 하는 걸 많이 봐서 이것저것 잘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 그런지 내가 만드는 한식에 관심이 많았는데 맛있다면서 잘 먹어주는 게 여간 고맙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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