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래염전 터 시흥 갯골생태공원에 다녀왔습니다.
분당 노인종합복지관에서 오랜만에 전체 나들이 행사를 가졌습니다. 약 200여 명이 버스 5대에 나누어 타고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있는 시흥 갯골생태공원과 대부도에 다녀왔습니다. 나는 IT봉사단 자격으로 일행과 함께 5호차에 탑승하였습니다.
시흥 갯골생태공원 자리는 원래 갯벌이었는데 1934년 일제강점기 때 소래염전으로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96년 폐염될 때까지 우리나라 소금 생산량의 30%를 공급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10여 년간 방치되었다가 옛 염전 복원과 갯골 자연환경 보전 및 활용 취지로 2014년에 생태공원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시흥 갯골은 2012년에 국가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기도 하였습니다.
소래염전지역은 갯골 중심으로 145만평 정도 펼쳐져 있었습니다. 시흥갯골생태공원은 그중 45만 평 규모로 조성된 국내 유일 내만 갯벌과 옛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생태공원입니다. 이곳에서 염전 체험할 수 있으며 지역 생물과 자연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인근의 소래 습지생태공원으로 출사 다녀왔던 기억이 있는데 시흥 갯골생태공원도 비슷한 느낌이었습니다. 시흥 갯골 생태공원은 내륙 깊숙이 수로를 끼고 있는 특이 형태의 사행성 내만 갯벌을 갖고 있는 공원입니다. 다양한 염생식물이 자생하고 각종 어류와 양서류 등이 서식하고 있으며 주변에 많은 조류가 찾아오고 있어 탐조대에서 이들을 관찰할 수도 있습니다. 시흥 갯골생태공원에는 사구 식물원, 해수 체험장, 염전체험장, 소금창고, 탐조대 등이 있는데 사구 식물원에서는 바닷가 모래에서 자생하는 사구식물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자체가 발달하면서 지방 곳곳 특색 있는 관광포인트가 잘 조성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나들이 가보면 언제나 깜짝 놀라게 됩니다. 취업 시장이나 교육 때문에 수도권으로 인구집중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이제는 우리나라 어느 곳에서나 꽤 살기 좋은 환경이 조성되고 있는 거 같습니다. 예전과 비교하면 우리 국력이 현격하게 성장하였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칠면조처럼 색이 변한다 해서 이름 붙여진 칠면초는 봄에 초록빛 띠다가 여름과 가을이 되면서 몸 전체가 점차 붉은색을 띠어 갯벌을 물들이게 됩니다. 칠면초는 염분이 있는 갯벌과 습지에서 군락을 이루고 사는 한해살이 풀입니다. 강화군 석모도에 가면 광활하게 펼쳐진 칠면초 군락지를 볼 수 있다는데 기회 되면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공원 한편에 높이 22m 6층의 목조 고층 전망대가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에 흔들전망대라고도 부르는 갯골생태공원 랜드마크입니다. 정상에 오르면 갯골생태공원 주변 전역이 보이며 시흥시 호조벌, 포동, 월곶동 및 장곡동 일대를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나무로 지어진 건물은 소금창고를 복원한 것입니다.
공원에 전시된 '가시렁차'는 천일염 산지였던 소래염전 일대에서 생산된 소금을 집하지까지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를 말합니다. 수로를 이용하던 소금 운송 방법은 가시렁차 도입 이후 육로 운송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소금 실어내기 용이하게끔 넓은 염전 안 구석구석까지 궤도가 깔려 있었는데 이를 통해 가까운 수인선 기차역까지 소금 운반하던 꼬마열차 별명이 '가시렁차'입니다. 가시렁차는 쇠바퀴 위로 두꺼운 널판때기 얹어 놓은 화차들을 가솔린엔진 기관차 꽁무니에 갈고리로 연결해서 사용하였습니다. 가시렁차 유래는 기관차가 '가릉가릉'하는 엔진 소리를 내서 가시렁차라고 불러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모래밭처럼 생긴 소금밭 놀이터가 있습니다. 소금 놀이터는 어린이가 장난감 이용할 수 있게 만들어졌지만 소금 찜질방이기도 합니다. 소금찜질은 소염과 살균효과가 있어 혈액순환에 좋고 체내 노폐물을 배출시켜 면역기능 향상과 신진대사 촉진 기능이 있습니다. 소금밭 놀이터 이용할 때는 신발과 양말을 벗고 입장해야 합니다.
염전 롤러는 염전작업시 바닥을 다지는 데 사용했던 도구로 '돌번지'라고도 부릅니다. 소금의 품질을 높이고 생산력을 높이기 위해 매일 롤러를 굴려 결정지를 다져야 했다는데 염부들에게 강도 높은 노동이 요구되었다고 합니다.
물레방아처럼 생긴 '염전 수차'는 바닷물을 염전으로 끌어들이는 데 사용하던 도구로 '무자위'라고도 합니다. 물을 퍼담아 쏟아내는 원리로 작동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돌려 물에 잠긴 날개로 물을 퍼담아 올릴 수 있습니다. 수차 작동하는 사람은 수차에 대각선으로 질러진 나무를 붙잡고 날개 하나하나 계단 올라가듯 순서대로 밟아 수차가 돌아가게 해서 바닷물을 퍼올리게 됩니다. 수차 날개판을 두 발로 번갈아 밟으면 바퀴가 돌아가고 퍼올려진 물은 붓도랑으로 흘러 들어갑니다. 이런 도구를 보면 염전 작업이라는 게 상당히 힘든 노동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흥 지역은 일제시대 때부터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이 있어 양질의 소금 산지로 각광받던 곳으로 해방 후에도 전국 소금 생산량의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근대화 바람으로 천일염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고 도시 팽창욕구가 커지면서 시흥지역 염전은 폐지되었습니다. 군자염전은 공장지대로 변해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소래염전만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서해안은 천일염 생산에 유리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습니다. 갯벌이 광활하고 경사도가 완만해 염전개발 비용 측면에서 유리하였습니다. 시흥지역은 서해로 흘러드는 큰 강이 없어 염도가 적당한 소금을 얻는데 적합하였으며 한여름에 비가 적고 일조시간이 길어 날씨 조건에서도 우수하였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1925년에 여의도 면적 2배 되는 규모의 군자염전이 오이도 지역에 완공되었습니다. 오이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라 육지와 연결되었습니다. 소래염전은 군자염전보다 10년 뒤에 조성되었습니다.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으로 시흥지역은 전국에서 질 좋은 천일염 생산 기지로 명성을 떨쳤습니다. 소래염전 완공 이후 협궤열차인 수인선이 부설되었습니다. 수인선은 군자염전과 소래염전을 지나면서 생산된 소금을 인천항으로 실어 나르거나 내륙으로 수송할 수 있었습니다. 염전지역에서는 트레일러처럼 소금을 나르기 위해 가시렁차가 도입되었습니다. 해방 후 1965년까지만 해도 군자염전과 소래염전 규모는 전국 염전의 절반이 넘는 58.1%에 달하였습니다. 1970년대 이후 천일염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고 도시개발과 산업화 가속으로 바다가 오염되면서 점차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군자염전 자리는 매립된 후 시화공단으로 변모되었고 소래염전은 10년가량 명맥을 더 이어가다가 96년에 폐지되었습니다. 소래염전 일대는 염전 폐지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생태계 복원력에 따라 스스로 갯벌로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에 정부는 일대를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하였으며 소래염전 자리는 우여곡절 끝에 골프장과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변신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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