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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학년 이야기

우문현답(愚問賢答)

by 77 Harvey 202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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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현답(愚問賢答)이란 어리석은 질문을 받고 현명하게 답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보 같은 질문에 현명하게 대답하거나 문제의 본질에서 벗어난 질문을 받고도 정확한 답변을 할 때 쓰는 말입니다. 유명인사나 스님 등 종교인들이 토크 콘서트 또는 즉문즉설 형식으로 질문을 받고 대답해주는 걸 보면 참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일반인들의 질문이 어떤 때는 뭘 저런 걸 물어보나, 그런 건 기본 아닌가, 저런 사적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는 건 자기 과시가 아닌가 싶기도 한데 답변하는 분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어떤 경우는 정곡을 찌르는 명쾌한 답변으로 보는 사람을 감탄하게 합니다. 인간의 심리와 본성을 파악하고 조리 있는 대답은 공감을 일으키며 때로는 유모어도 있어 지루한 느낌 없이 집중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그런 대담 프로가 인기를 얻고 있는지 모릅니다. 반면에 정치인들이나 관계 인사들의 국회 질의 및 답변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우문우답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질문에 익숙하지 못한 문화인 듯합니다. 아주 어렸을 적, 부모님에게 질문할 때나 선생님들에게 질문할 때 핀잔받았던 경우가 많이 떠오릅니다. 뭐 그런 것도 모르냐,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야, 너 몇 살인데 아직도 그런 거 모르냐, 너 바보 아냐 등등 궁금증이나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는 저에 대한 평가나 왜 그런 질문이 나왔는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에게 물어본다는 게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요즘 아이들이나 부모님들, 선생님들은 안 그렇겠지만 제가 어렸을 때의 기억은 참 그렇습니다.

 

오래전 미국에서 성인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40여 명 되는 반에 각 나라에서 참여하였는데 한국에서 온 학생은 저를 포함해 3명이 있었습니다. 교실에서 다른 외국학생이 질문할 때 들어보면 왜 저 친구는 저런 걸 물어보느라 강의를 중단시키나 싶어 짜증 나고 또 그 학생은 몰라서라기보다 자기 의견을 얘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미국 교수님들은 참 진지하게 질문을 들어주고 학생의 의견에 대해 자기 생각을 말해주곤 하였습니다. 학생들의 질문에 대해 항상 격려하고 어떤 질문이나 의견도 교실에서 피력하라고 독려하는 걸 보았습니다. 반면 저를 포함한 한국 학생들은 교실에서 일체 질문이 없었습니다. 강의 내용도 대부분 미리 예습하였으니 대충 알고 있는 거고 특별히 물어볼 말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 교수님들은 그걸 particip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학생평가점수에서 참여점수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거였습니다. 우리는 시키는 대로 하고 알려주는 대로 따르는 걸 모범으로 여기는 문화인 것 같습니다. 그런 걸 보면 미국에서 페이스북 같은 SNS 기업들이 탄생하고 성장한 건 단지 시장이 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일반인들의 참여가 보편화되고 긍정적인 문화권이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우문현답의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스님의 일화입니다만 똑똑하게 생긴 아이 하나가 손에 작은 새를 쥐고 스님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스님, 이 새가 죽은 건가요? 살아있는 건가요?" 그러면서 스님이 살아있다고 하면 힘을 줘서 죽여버리고 죽었다고 하면 날려 보내야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얘야, 그 새의 생사는 네 손에 달렸지, 내 입에 달린 게 아니란다" 아이는 새를 날려 보내면서 스님의 지혜에 감탄하였다고 합니다. 

 

몇 년 전 들었던 얘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프레젠테이션이라는 주제였는데 우문현답에 관한 얘기입니다. 어느 기업내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에 청중 한 분이 질문하면서 "돈도 많이 들고 사람도 없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라고 질문하였습니다. 그 사람의 질문이 상당히 공격적이어서 듣는 다른 청중도 다 불안해지는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저 사람의 의도가 무엇일까? 우리가 얼마나 준비하였는지 또 새로운 프로젝트의 가능성이나 결과에 대해 좀 더 강렬한 인상을 주었어야 하는데 어떻게 표현하는 게 좋을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의 그런 질문은 사실 우문으로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화를 내면 또 우답이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우리 자금사정도 나쁘고 여러 프로젝트가 동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그룹 차원에서 적절한 뒷받침이 이뤄질 것인가 걱정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몇 년간 구조조정을 통해 현장인력이 축소된 상황에서 과연 우리가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할 수 있을까 우려하시는 것 같습니다"라고 언급해주면 분위기를 바꿔주게 될 것입니다. 이 때가 정말 중요한 순간인데 웬만한 고수 아니면 그렇게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언급 후에는 발표자가 뭐라고 대답하던지 간에 청중들도 호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조금 전 불편했던 청중의 분위기가 점차 발표자에게 호의적이 되고 다음 질문도 호의적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호감은 논리적이지 않습니다. 발표자의 자세가 청중으로부터 호감을 이끌어낸다면 실제 발표 내용에 모순점이나 부족함이 있더라도 눈감아줄 수 있게 됩니다. 또 하나의 팁은 질문자의 말을 요약하고 포장하는 것입니다. "그 문제는 대표님께서도 같은 의견을 갖고 깊은 우려를 표명하셨습니다"하고 덧붙인다면 질문자의 공격적 마인드를 누그러뜨릴 수 있고 다른 청중은 더욱 호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상대의 공격에도 호의를 베푼다면 다음에는 그 상대의 호의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발표 내용에 반감을 갖고 있는 질문자나 청중, 그리고 결정권자 모두를 내 편으로 끌어 들일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먼저 긍정적이고 호의를 베풀 때 가능합니다. 

 

우문이 아니라도 우리는 어떤 질문을 받을 때 편안하게 듣는 경우가 별로 없는 거 같습니다. 질문도 공격적이고 답변도 공격적인 경우를 많이 봅니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남을 들춰내려고 합니다. 상대가 돋보이는 걸 보기 불편해합니다. 그런 상대에게는 우선 그 상대의 공격적 마인드를 누그러뜨릴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공격에 공격으로 대응해서는 답을 얻기 어렵습니다. 조금만 늦추고 한 발자국만 뒤로 하면 서로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을 텐데 우문현답의 지혜가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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