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혼혈인종, 메스티소와 물라또
오늘은 한 번쯤 언급하고 싶었던 인종에 관한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한동안 중남미에 흑인이 많다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무더운 지역에 흑인들이 많은데 기후 때문에 원래부터 흑인이 존재했던 게 아닌가도 싶었습니다. 카리브 연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1804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공화국 아이티 같은 경우 전 국민의 95%가 흑인이라고 합니다. 인근 자메이카도 인구의 90%가 흑인입니다. 그 흑인들은 도대체 어디서 온 사람들일까? 원래 살던 원주민은 없었는지 어떻게 된 걸까? 궁금했지만 더 이상 알아보려고는 하지 않았었습니다. 콜롬비아나 에콰도르 안데스 산맥 국가에서도 무더운 해안지역은 흑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고 특히 브라질은 흑인 인구로만 따지면 아프리카 바깥에서는 어느 국가보다 흑인 숫자가 많은 나라입니다. 지난번 아프리카 모잠비크에 체류하게 된 계기로 세계사를 다시 읽어보면서 그게 모두 다 아프리카에서 잡아온 흑인 노예의 후손이라는 걸 새삼스레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흑인을 포함해서 그렇게 많은 흑인들이 전부 노예의 후손이라니 믿기지 않지만 1492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이후 몇 세기 동안 많은 흑인들이 아프리카를 떠나야 했습니다. 유럽에 살던 백인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신대륙으로 이주해왔지만 아프리카에 살던 흑인들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니라 불가항력 상태에서 노예 신분으로 끌려온 것입니다.
유럽인들은 신대륙 식민지에서 사탕수수 밭과 목화밭을 경영하며 필요한 노동력을 모두 원주민 인디오와 흑인 노예로 충당했습니다. 인디오들은 과중한 노동을 감당하지 못했던 편이며 특히 유럽에서 넘어온 각종 질병에 취약해서 인구의 상당수가 질병으로 사망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원주민 종족도 많습니다. 흑인들은 열대지방에서 왔기 때문에 무더운 기후에 잘 적응하였고 인디오보다 강인한 체력으로 더 많이 살아남았습니다. 땅을 빼앗긴 원주민 인디오들도 그렇지만 고향을 두고 멀리 아메리카 대륙으로 잡혀와 갖은 고초를 견디며 살아온 흑인들은 서글픈 인류 역사의 피해자들입니다. 대략 2천만 명 정도 아프리카 흑인들이 노예선을 통해 아메리카 대륙으로 끌려갔다고 하는데 인류가 저지른 죄악 가운데 노예제도보다 더 잔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쩌다 아프리카 노예선에 관한 영화나 다큐를 보게 되면 그들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로 끌려다녔고 신대륙에 와서도 노예 신분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었는지 인종을 떠나 인간이 그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한다는 게 역겨울 정도입니다. 지금에 와서 식민지를 운영했던 국가의 왕이나 대통령이 아프리카 국가를 방문하는 길에 지나간 역사를 사죄하는 제스처를 하고 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싶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지금도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삶의 질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노예로 잡힌 흑인들도 노예상인이 힘들여 잡은 게 아니고 흑인 부족 간 분쟁 후 다른 종족을 노예로 팔아먹은 경우도 많습니다. 현대에 이르러 신대륙에 살고 있는 흑인 노예의 자손들은 지나간 역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자기가 흑인으로 태어난 걸 원망하고 있을까요? 노예 역사에 대해 울분을 머금고 있을까요? 백인만 보면 증오를 표시해야 될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지도자들이 그들의 개인적 야욕을 위한 도구로 역사를 문제 삼고 선동할 뿐이지 일반인들은 수십 년 수백 년 지나간 일에 대해 개인적 감정을 드러낼 필요도 없고 갖고 있지도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그 시대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아무런 고초도 겪지 않았으며 고난이나 불행을 이해조차 못하는 젊은 정치인들이 지나간 역사를 청산하겠다고 국민을 선동하는 걸 보면 스스로 역사에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페인 사람들은 식민지에서 일부러 혼혈 정책을 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인종이 섞이다 보니 2세대, 3세대로 혼혈이 계속되면서 다양한 종류의 혈통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백인을 가장 우월한 집단으로서 사회 계층의 맨 위 지배세력으로 놓고 그 아래에는 백인 피가 얼마나 섞였냐에 따라 사회적 신분의 차이를 두었습니다. 식민시대에는 같은 백인이라도 대륙에서 온 백인과 현지에서 태어난 백인은 신분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결혼 후 아이를 가지게 되면 본국에 가서 아기를 낳고 다시 돌아와야 그 아이가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임산부들이 대서양을 건넜다고 합니다. 중남미 식민지에서 백인들은 이베리아 반도 사람이란 뜻으로 빼닌술라르 (Peninsular) 또는 유럽인이란 뜻으로 에우로빼오(Europeo)라고 불리었습니다. 반면 유럽인의 자손이지만 식민지에서 태어난 사람은 끄리오요(Criollo)라고 불리었습니다. 이들 끄리오요들은 지배계층에 속하긴 하지만 승진이나 사회적인 처우에서 빼닌술라르보다 차별을 받았습니다.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혼혈을 메스티소(Mestizo)라고 부르는데 이는 백인 피가 50% 인 셈입니다. 이 메스티소가 만일 백인과 결합하게 된다면 그 자녀들은 백인피가 75%인 셈인데 이를 까스티소(Castizo)라고 부릅니다. 만일 그 자손들이 이렇게 계속 백인과 결합하게 된다면 백인 피의 점유율이 더욱 높아지게 되어 3세대를 때르세론(tercerón), 4세대는 꽈르때론(quarterón), 5세대는 낀테론(quinterón)으로 부르고 그다음 세대가 되면 거의 백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또르나아블랑꼬(torna a blanco)가 됩니다. 스페인은 식민지를 부왕령으로 분할해서 통치하였는데 잉카 제국이 있었던 페루 부왕령의 규모가 가장 컸습니다. 페루 부왕령의 기록을 보면 혈통에 따라 인종을 구분하는 용어가 20가지 넘었다고 합니다.
다음 도표는 부모 세대의 백인(반도인), 흑인, 인디오 3 인종이 결합해서 낳은 자식이 1세대와 2세대에서 어떻게 불리는 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백인과 흑인이 결합하면 물라또(mulato)라고 부릅니다. 백인과 백인 사이지만 현지에서 태어나면 백인이라도 끄리오요(criollo)라고 부릅니다. 백인과 인디오 사이는 메스띠소(mestizo)이고 인디오와 흑인 사이는 삼보(zambo)라고 합니다. 2세대가 되면 경우의 수가 크게 늘어나게 되는데 먼저 물라또를 보면 물라또와 백인이 결합하는 경우 그 자녀는 모리스꼬(morisco), 물라또와 인디오 사이라면 치노(chino), 물라또와 흑인 사이라면 그냥 흑인이라는 뜻으로 네그로휘노(negro fino)라고 합니다. 백인과 인디오 사이의 메스티소(mestizo)가 백인과 결합하면 그 자녀는 까스티소(castizo), 인디오와 결합하면 촐로(cholo), 흑인과 결합하면 시마론(cimarron)이 됩니다. 인디오와 흑인 사이의 삼보(zambo)가 백인과 결합하면 그 자녀는 모레노(moreno), 인디오와 결합하면 깜부호(cambujo), 흑인과 결합하면 쁘리에또(prieto)라고 부르게 됩니다. (주 : 용어는 스페인어와 그 발음에 따랐습니다.)
피부색에 따라 신분이 구별되는 사회는 세월이 갈수록 점차 효력을 잃고 사회경제적 요인에 따라 자연히 다른 구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즉 경제적 자산을 갖고 있거나 유력자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더 상위에 올라갈 수 있었던 반면 백인이라도 돈 없고 인연 없는 사람들은 하위 계층으로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지배계층인 페닐술라르와 끄리오요도 사회경제적 현실에 따라 균열이 생기고 상호 대립이 커지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본국에서는 빼닌술라르가 더 본국 입장을 대변할 수 있다고 믿어 이들을 중용했지만 끄리오요들의 반감을 사게 되어 결국 끄리오요들이 독립운동을 주도하게 되었습니다.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 3개국에서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시몬 볼리바르는 스페인계 끄리오요였습니다.
백인과 흑인의 혼혈인 물라또는 피부색이 흑인이어도 진짜 흑인보다 처우가 조금 나았습니다. 19세기 아프리카에서도 물라또가 백인과 흑인의 중간자적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백인들은 이들을 잠재적 아군으로 대우했고 흑인들도 피부색 기준으로 더 하얀 쪽을 우열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대통령의 경우 케냐출신 흑인과 백인 여성간에 태어난 자식이므로 물라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물라또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흑인을 똣하는 니그로(negro)와 같이 심한 모욕으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라또가 아니라도 인종에 관한 모든 용어는 차별로 간주될 수 있어 사용하는 경우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스페인 식민지에서도 19세기에 들어와서는 개인 인적 등록부에서 인종에 대한 기록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인종에 대한 용어는 제1세대 용어 정도만 남아있고 그 아래 세대 용어에 대한 것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cholo, chino, moreno 등 인종을 나타내는 용어는 현재에 이르러 각 나라별로 전혀 다른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는 대부분 스스로를 메스티소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몇 백 년 동안 조상이 어떻게 혼혈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지만 메스티소를 그저 백인 혼혈이라는 의미 정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메스티소 외에 순수 인디오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나라입니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백인이 90% 이상 되는데 이는 20세기 초 유럽계 이민이 급격히 증가하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럽 경제가 어려웠을 때 스페인, 이태리를 비롯한 유럽 국가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부유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등지로 이주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은 반도인 스페인 남자와 백인과 인디오 사이 혼혈 여자인 메스티사(Mestiza), 그리고 그들의 자녀 까스티사(Castiza)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Wikemedia에서 가져왔으며 멕시코 화가 Miguel Cabrera의 1763년 작품입니다.
위의 그림은 멕시코의 계급별 혼혈 인종을 보여주고 있는 Wikipedia 사진입니다. Ignacio María Barreda의 1777년 유화작품이며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학술원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아래 Wikimedia 사진은 페루 화가 Cristóbal Lozano(1705-1776)의 인종 그림으로 백인 인디오 혼혈 남자인 메스티소와 인디아 여자의 아들 Cholo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래 그림은 다른 그림을 보고 제가 그린 수채화인데 마음에 들어서 블로그 프로필 사진에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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